[강미숙의 세상돋보기] 광기의 조국에서 "내가 조국이다"

강미숙 / 기사승인 : 2022-05-30 17: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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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미숙 소셜칼럼리스트= 내가 사는 원주에서 정태춘의 <아치의 노래>는 개봉 1주일 만에 그것도 하루에 한번 상영으로 막을 내렸다. 그 시간을 맞추지 못한 나는 결국 서울에 가서 영화를 보았다. 1주일 늦게 개봉한 <그대가 조국>은 용산 CGV에서 열린 언론시사회 때 보았지만 어제 가끔 속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 부부를 초대하여 두 번째로 보았다. 그나마 텀블벅 덕분인지 하루 세번 상영이었다. 텀블벅으로 내게 온 티켓은 조국사건의 내막을 잘 모르는 서울 사는 이들에게 선물했다.

100석이 좀 안되는 규모의 극장에는 우리 외에도 15명이 함께 있었다. 20대 자녀들을 데리고 온 가족, 친구 사이로 보이는 중년 여성 네 분과 역시 친구인 듯한 남성 두 분,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두 커플과 혼자 오신 남성, 그리고 우리 네 명의 중년 부부. 영화관계자도 아닌데 영화를 보러 가서 머릿수를 세는 것이나 저들이 어떤 관계일지 헤아려 본 것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가가서 통성명을 하거나 명함을 주고 싶었다.

지역에서 조국 사건과 관련하여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조차 없어 속 끓이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사막 같은 메마른 지역생태계에 둘러싸여 말 한마디 못하고 오히려 토사물 같은 오물을 뒤집어쓰는 듯한 외로움이 얼마나 절망스러운지 너무나 잘 알기에 그냥 말없이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엔딩이 미처 다 올라가기도 전에 서둘러 일어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뒤풀이하자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두 번째 보는 영화인데도 여전히 힘들었다. 여전히 눈물을 감출 수 없고 러닝타임 2시간 내내 빨라진 심장박동과 달뜬 열로 시달리다 엔딩자막이 올라갈 무렵에는 탈진상태가 되었다. 언론시사회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네 식구가 뿔뿔이 흩어져 밥을 뜬 숟가락에 식탁김을 손으로 꼭꼭 눌러 씩씩하게 먹는 조국 교수의 옆모습과 뒷모습이 또 마음에 와서 박혔고 둥근 식탁을 벽에 붙여 쓰는 좁은 주방이 뇌리에 남았다.

정의롭지 않은 국가와 오직 암기를 잘하는 재주로 판검사가 된 이들이 정의를 독점한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들에게 무수한 질문을 던지는 이런 영화를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쉬고 싶은 주말에 돈과 시간과 수고를 들여 영화관을 찾고 2시간이 넘는 시간을 견디며 외면한다고 당장 별일도 없는 주제를 천착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잘나가는 대학교수에 민정수석까지 한 사람을 쉴드 치고 숭배한다는 비아냥을 듣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그렇기에 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눈 감지 말고 마음 아픈 고통을 견디며 진실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다. 노무현이 당했던 사냥을 한명숙 전 총리가 모해위증으로 당했고 정연주 사장을 거쳐 조국이 당했고 김경수도 그 올가미에 걸려들어 수족이 묶였다. 누군가 일할 만한 사람이거나 위협이 될 만한 존재가 나타나면 또다시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의 사냥감이 될 터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있던, 아니 필요하다면 SNS에서 댓글 한번 주고받은 일로도 영혼이 털릴 수 있음이다.

영화에 초대한 친구 부부는 영화 개봉소식은 들었는데 천천히 가서 봐야겠다 생각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런 영화가 왜 독립영화로 열악하게 배급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 어느 곳에도 심지어 숨 쉬는 것마저도 자본의 영악함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쉬, 종종 잊고 살기 때문이다. 친구의 남편은 영화 20여분쯤 지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고 싶은 걸 참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아마도 구역질이 났거나 숨쉬기 어려웠으리라. 친구는 너무 힘들어서 아침 먹은 게 다시 체하는 것 같다며 어떻게 이런 영화를 두 번씩이나 볼 수 있냐고 물었다.

친구 부부는 내 책을 열 세권이나 사서 주위에 선물했는데 열세 명을 채우는 게 참 어렵더라고 했다. 그나마 한번쯤 지극히 개인적인 삶에서 공동체를 바라보며 생각이란 걸 할 만한 사람이 그렇게 없다는 것이 씁쓸하다고 했다. 내 책을 권하는 것이 관계 속에서 일종의 커밍아웃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꽤 여러 분에게 들었다. 여러 권을 샀는데 아직 못다 나눠줬노라고. 혁명을 말하거나 반정부적인 내용도 아닌데 어쩌다 우리는 이 지경이 되었을까. 시계는 정확하게 30년 전인 1992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질문하는 법과 질문이 곧 공부임을 가르치지 못한 교육, 질문하지 않는 기자들, 질문하지 않고 풍요만 좇는 삶.

그래도 나는 소시민으로 살면서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하는 친구와 공포를 견디기로 한 장경욱 교수와, 언론이 말하는 것이 사실인지 직접 재판을 봐야겠다고 법정으로 달려가 2년 반이 넘도록 재판을 팔로업하는 박효석 유튜버와, 정치적이지 않은 사람이 가장 정치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며 누구도 예외가 아님을 흘러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말하는 박준호 씨와, 진실을 밝히는 데 기꺼이 IT전문가로서의 지식을 공유하는 박지훈 씨와, 자기 안의 공포를 이기고 끝까지 자신을 지켜낸 김경록 PB와, 검찰이 던져주는 먹잇감을 받아먹는 기울어진 언론환경 속에서도 동양대 총장의 진실을 파헤친 심병철 기자와, 더 이상은 눈 뜨고 볼 수 없다고 전국에서 달려와 서초동을 가득 메운 촛불들이 ‘내가 조국이다’라고 외쳐준 덕분에 집단광기 속에서도 우리가 ‘사람’일 수 있는 거라고 믿는다.  

 


조국은 아직 터널 속에 있고 터널을 나와 세상의 빛을 한 몸에 받을 때쯤 그의 존재양식은 지금과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박통 아래서 DJ가 견뎌낸 인고와는 다른 그 무엇일 가능성이 높다. 누구도 강요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때로 인간의 생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데리고 가는 법, 어쩌면 매일 돋아나는 간을 쪼아먹히는 형벌이 끝나고 나면 더 이상 간이 필요 없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
여기
이곳에
살고 있는
이제,
그대가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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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토토님 2022-06-01 19:44:11
저도 보면서 많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정치적 색채를 떠나 검찰은ㅁ한 개인과 가족에게 무슨 짓을 하고 그들을 무너뜨린 건 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기를 바랍니다.
이수님 2022-06-11 09:06:42
제가 영화과에 가서 머릿수를 세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아서 울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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