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광안 김혜겸 변호사.[사진=법무법인 광안] |
'띠리링' 크리스마스 즈음에서 문자메시지가 하나 왔다. 카드결제 혹은 광고가 아니면 대부분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아니었다.
"변호사님, 철수(가명)아버지입니다. 작년에 주신 큰 도움에 항상 감사드립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케이크 기프티콘이 와있었다.
문득 작년에 국선사건을 하면서 철수를 처음 만난 시간이 떠올랐다.
철수의 기록을 처음 봤을 때는 나도 모르게 예단이 생겨서 "얘도 그렇고 그런 놈이구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죄명은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공중밀집장소에서의추행)' 인데다가 범죄전력을 보니 예전에 강제 추행죄가 하나 더 있었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예단이 생길법한 상황이었다.
이후 철수와 철수 아버지를 만나면서 나의 크나큰 자만심과 오류에 대해 거듭 잘못을 뉘우쳤다.
철수는 정신지체 3급 장애를 가진 아이로 다소 부족한 지능을 가진 아이이다. 철수에게는 아직 추행 행위가 얼마나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없으며 그냥 여자들은 모두 엄마 같은 사람이고 단순히 좋은 향이 나면 좋은 사람인 정도이다. 그런 철수가 지하철을 탔고 당시 지하철은 만원이었으며 밀려오던 철수가 어떤 여자분 뒤에 섰는데 샴푸 향이 좋아 '킁킁' 거린 행동이 몸이 밀착되어있는 행동과 결합해 상대방 여자분이 불쾌감을 느끼고 신고를 한 것이다.
기록을 보면서 의아한 점이 가득했다. 여자분의 입장에서 기분 나쁠 수는 있지만, 추행 행위로 지적받은 내용이 과연 모두 철수의 행동인가에서부터 시작됐다. 피해자의 진술을 보더라도 '왼쪽 허벅지에 그 사람 신체가 붙어있었어요'가 전부이고 목격자의 별다른 진술도 없었다.
철수는 키가 큰 편이라 손으로 허벅지를 만지려면 상대방 여자분도 키가 커야 하는데 키 높이에서부터 맞지 않았고 당시 9호선 퇴근 시간의 지하철이었기 때문에 손으로 일부러 만지작거린 것이 아니라면 그 정도의 행동은 퇴근 지하철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문제는 철수가 킁킁거리며 샴푸 향을 맡은 것이 복합적으로 불쾌감을 주어 이렇게 사건화가 돼 온 것이었다.
철수는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 정도를 표현하는 지능의 아이였고 그 아이에게 샴푸 향은 그냥 좋은 향이었다. 기존 전력의 성추행 사건 역시 기록을 확인해보니 지능이 발달하지 않던 철수가 학교 친구를 좋아서 때린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었고 이런 사정을 모두 알았던 피해 학생들이 처벌불원의 의사를 표시하였기에 선도조건부 기소유예로 종결된 것이었다.
이날 이후 아버님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매일같이 철수의 옆을 다니면서 옳고 그름을 알려주셨고 하필이면 오늘 아버님이 일이 생겨서 함께 못 다니는 찰나에 철수가 만원 지하철을 타면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속상해하는 아버님과 옆에서 사탕을 먹으며 희희낙락하는 철수의 모습을 보니 참 가슴이 아팠다.
소년사건에서 무죄판결과 동일한 의미의 불처분이 나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오히려 반성하지 않는다고 해 더 강한 처분이 내려올 수도 있는 상황이 크다. 하지만 철수의 사정은 왠지 불처분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고 정말 철수가 고의로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것이 내 눈에 보였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 당일 기록과 의견서를 모두 검토하신 판사님은 철수를 보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철수 하고 싶은 일은 있니?" "네! 아빠랑 다니면서 음식도 만들고 할거에요" "아빠랑 함께 다니니 좋니?" "네! 아빠랑 다니니 좋아요" 등등
판사님은 어머니와 같은 모습으로 철수를 바라보셨고, 철수에게 어떠한 처분도 내리지 않는 '불처분 판결'을 내려주셨다. 나도 모르게 법정을 나오면서 울컥했고 철수는 그게 뭔지도 모른 채 그냥 웃으며 법원이 신기하다고 돌아다녔다. 삭막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도 삭막해져 간다.
상대방 여성분은 당연히 기분 나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지체를 가진 철수가 고의를 가지고 행동했을까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철수를 만났다면 기분 나빠하며 신고를 했을까? 물론 오해일지도 모르지만 기분이 나쁜 상황일 테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도 철수를 보니 다시 웃음이 났다. 철수는 지금 열심히 요리를 배우며 직업훈련을 하고 있다. 철수가 아버님의 품을 떠나 나오는 세상이 그래도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도록 어른인 내가 더 노력해야겠다.
※외부 원고는 본 편집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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