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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홍(좌측)의 현역 시절 경기 장면) |
[조영섭= 스포츠 기자] 지난 9월 여의도에서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는 박기홍 관장을 만나 담화를 나눴다. 박기홍 관장을 처음 본 것은 필자가 용산공고에 근무하던 1993년 풍산체육관 소속으로 그가 프로 복서로 활동할 때였다.
박기홍은 1969년 3월 전남 벌교태생이다. 그는 유년 시절 서울로 상경 외삼촌인 프로복싱 동양 플라이급 챔피언 양홍수 챔프(원진 체)를 따라 체육관을 들락거리면서 복서로 꿈을 키우게 된다. 이 대목에서 문득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복싱 국가대표로 참가한 이규환 선생과 그의 조카이자 70년대 국가대표 코치로 활약한 이한성 트레이너가 오버랩(Overlap) 된다. 여기서 잠시 전설의 복서 양홍수의 복싱 경력을 살펴보자. 1952년 벌교태생의 양홍수는 1974년 국내 플라이급 타이틀에 도전 극강의 김학영에 무승부를 기록한 실력파였다.
1977년 12월 8일에는 일본 오사카에서 동양 챔피언 다까다 지로(일본)의 6차방어전 도전자로 내정되어 판정승을 거두며 동양 플라이급 정상에 오른다. 이와 함께 한국 프로복싱은 정상일(주니어 플라이), 김영식(밴텀), 황복수(페더), 오영호(라이트), 주호(주니어 미들), 유제두(미들)와 함께 11체급 중 7체급을 석권해 복싱 강국으로 확실하게 입지를 구축했다.
▲(양홍수와 이시이 고키 경기 포스터) |
왼손잡이면서 격렬한 타격전을 펼쳤던 파이터 양홍수는 김태식·박찬희가 출연(出演)하기 전 김학영(동신체)과 함께 플라이급의 대표적인 복서였다. 챔피언에 오른 양홍수는 논타이틀전에서 이가라시를 8회 KO로 물리치지만 정작 일본 동경에서 벌어진 1차방어전에선 홈 텃세에 밀려 2ㅡ0 판정패를 당한다. 1979년 8월 아오모리에서 3번째 만난 양홍수는 군말 없는 판정으로 이가라시를 잡으면서 투타임 동양 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양홍수는 2차방어전에서 세계 랭커 호주미 슈이치(일본)를 맞아 9회 KO승을 잡으며 기염을 토했으나 1981년 3월 1978년 아시안게임과 아시아선수권 2관왕에 이어 세계선수권(유고) 동메달을 획득한 일본 국가대표 출신 이시이 고키에 석패 한다. 이후 양홍수는 3차방어전에서 신갑철(인천 대우)을 4차방어전에서는 전 WBC, 플라이급 챔피언을 지낸 필리핀의 프랑크 세데뇨를 판정으로 잡아내는 등 5차 방어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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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타임 동양 플라이급 챔피언 양홍수) |
양홍수 경기의 하이라이트는 전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김성준과 벌인 2차례에 걸친 라이벌전이다. 1980년 6월 벌어진 1차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양홍수는 1981년 6월 재대결에서 근래에 보기 드문 치열한 타격전 끝에 10회 전원일치 판정으로 제압하고 35전 28승(7KO) 2무 5패를 기록하며 명불허전(名不虛傳) 복서임을 증명했다. 원정경기를 무려 10차례 치르면서 기록한 순도(純度) 높은 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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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공고 감독 시절의 복싱계 마키아벨리 황철순 감독) |
박기홍은 삼촌과 친분이 있는 황철순이 지휘봉을 잡은 리라공고에 1985년 입학해 복싱을 시작, 그해 3월 서울 신인대회 출전 우승을 차지한다. 박기홍은 동물적인 반사신경과 감각으로 한 템포 빠른 공격을 구사하는 테크니션이다. 1년의 숙성(熟成)기간을 거친 박기홍은 한 뼘씩 성장한다.
학원 스포츠계를 정복한 한국 아마복싱 역사의 1세대는 이남의(한국체대), 박기철 (한국체대), 이현주(목포대), 송중석(한국체대), 성두호(전남체고)가 맹활약한 이재인 사단의 전남체고가 1979년 고교무대를 평정했다.
2차로 학원 스포츠계를 평정한 팀은 김석호(여주군청), 한광형(경희대), 김석현(동국대), 정해명 나홍진(경희대), 조동범·전병성(한국체대) 등이 맹활약한 1985년과 1986년 이흥수 사단의 서울체고 복싱부였다.
박기홍이 소속된 황철순 사단의 리라공고팀은 이런 극강의 서울체고와 용호상박(龍虎相搏) 난형난제(難兄難弟)의 각축전을 벌이며 시너지 효과(Synergy 效果)를 일으키면서 조동범·한광형 ·나홍진·김석호 등 서울체고 주축들이 대거 졸업한 1987년 바통을 이어받아 학원 스포츠계를 평정했다. 그 중심엔 박기홍을 비롯한 이창환·조인주·김진호가 있었다.
제4차와 5차 학원 스포츠계 평정은 복싱계 징키스칸 이라 불리는 곽귀근 감독이 이끄는 경북체고가 1995년 배호조·최진우·강용수·김상현·김건우·임경섭, 2007년엔 신종훈·우성재·정진건· 김동현·김영길 등에 의해 2차례 학원 스포츠계를 완전무결하게 평정했다.
리라 공고 소속으로 1986년과 1987년 전국체전 2연패를 달성한 박기홍은 1987년 7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벌어진 제4회 세계 청소년대회 플라이급 대표로 선발된다.
박기홍은 리라 공고 시절 자신의 복싱을 완성 시켜준 은사인 황철순 감독에게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았다. 고교를 졸업하고 한국체대나 서울시청에 가고 싶었으나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지방대(동아대)로 가게 돼 당시 서운한 마음이 많았지만 돌이켜 지난날을 회상해보면 동아대에 진학해 얻은 것도 많아 전화위복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희망과 절망은 손바닥이다. 뒤집으면 인생이 변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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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계 히딩크 김승미 감독과 황철순 대표팀 트레이너(우측) |
박기홍의 스승 황철순은 1955년 경남 고성 출신으로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을 우승했고 1979년 제1회 뉴욕 월드컵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스타 복서였다. 그는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스포츠계 편견을 깬 대표적인 지도자다.
아테네식 스타일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겸비한 김승미 전 대표팀 감독과 대조적으로 혹독한 훈련으로 복싱계 <마키아벨리> 라는 명성을 얻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프로복싱 세계 정상에 오른 변정일과 조인주가 황철순의 미다스의 손(Midas Touch)을 거쳐 명 복서로 거듭 탄생했다.
한편 박기홍은 1990년 6월 제2회 서울컵 대회에 국가대표(플라이급)로 선발돼 8강전에서 인도네시아의 <함다니> 를 14ㅡ12로 잡고 준결승에 진출 소중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진 대학선수권대회에서도 1985년 루마니아 세계 청소년대회(밴텀급) 우승자 황경섭(청주사대)을 송곳 같은 스트레이트를 명중시키며 판정으로 잡고 물오른 기량을 과시했다. 제2회 서울컵 당시 서울컵 대회에서 <리라공고> 출신 이창환이 <서울체고> 출신 조동범에 박빙의 근소한 점수 차로 따돌리고 결승에 진출하자 다음 경기에서 <서울체고> 출신 한광형이 <리라공고> 출신 박기홍에 역시 근소한 판정승으로 결승에 진출 리라공고와 서울체고 출신들의 맞대결은 1승 1패를 기록 장군멍군으로 결말이 났다.
리라공고 황철순 감독과 서울체고 이흥수 감독은 <이기는 정주영 지지 않는 이병철 이란> 문구처럼 당시 학원 스포츠계를 양분 한 명장들이다. 1992년 3월 동아대학을 졸업한 박기홍은 7년 동안 68전 61승 7패 (37KO) 승을 기록하고 복싱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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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복싱 체육관 관장 박기홍) |
은퇴 후 그는 동대문 이동상가에서 노점상을 단속하는 보안팀장을 맡으면서 성실한 업무 처리능력을 인정받아 수년의 세월이 흘러 그 분야에서 탑 독의 위치를 선점한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심정으로 복싱판에 컴백 부천 상동에 건물(300평)을 12년 전에 매입한 박기홍은 8년 전 여의도에 복싱 체육관을 개관,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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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선수로 활약하는 장남 박건영 군 경기 장면) |
1997년 결혼한 박기홍은 현재 월곡동 APT에 살고 있다. 슬하에 2남을 둔 그는 23살인 큰아들 박건영 군이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의 럭비선수로 일본에 유학 현재 치바현 체육대학에서 럭비선수로 맹활약하고 있고, 21살의 막내아들은 현재 청주대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청소년 대표와 국가대표를 거치면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박기홍은 사회에 진출해서도 세상이란 바다에 악조건이란 파도를 넘으면서 닥친 숱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모범 표본(模範標本)을 보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건승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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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5
- 신성수님 2022-10-07 14:52:06
- 양홍수...제가 처음 복싱장의 문을 두들리고 열심히 운동 햇을때 동양 챔피언 이었다. 주변에 오영호 선배 등 막강한 선배들이 즐비 했던 기억이다. 양홍수 그분과 아침 로드웍 (장충동 국립극장 남산 타워) 에서 새벽에 만나 몸도 풀고 스파링도 몇번 해봣던 기억이다...왼손잡이 복서. 민첩한 동작과 어디에서 펀치가 나올지 알수 없는 빠른 주먹...저 또한.. 양홍수 형님께서 "너랑은 스파링 하기 싫다. 너무 빨라" 라는 칭찬도
- 삼봉님 2022-10-07 14: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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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선배님들의 스토리는 아직도 감동을 줍니다
정확하고 멋진 표현 ..
김승미김독님, 황철순감독님, 이흥수감독님 꼭 건강하셔서 좋은날 한번 뵙기를 바랍니다
박기홍 선배님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솔직히 복싱인들만 알수있는 디테일한 표현 ..
감동입니다
- 유심조님 2022-10-08 12: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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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홍관장님의 전설적인 캐리어가
다시 한 번 조명됩니다.
이렇듯 조기자님의 발로 뛰는 팩트체크는
그때 그시절의 좋은 추억입니다.
건강지대본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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