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스포츠 연예가 산책] 공명정대한 포청천 박동안 국제심판

조영섭 / 기사승인 : 2022-10-21 21: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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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안 심판위원(좌) 김민기 관장

 

[조영섭=스포츠 기자] 청명한 지난 주말 필자는 경기도 구리시 갈매동에 거주하는 박동안 국제심판 위원을 만나기 위해 구리시에서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는 김민기 관장과 동행 그의 자택을 찾았다.

박동안 위원은 1949년 10월 전남 해남 출신으로 1968년 제기동에 있는 신도체육관에서 복싱을 배워 그해 개최된 서울 신인대회에 L급으로 출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LW 급에 출전한 권일 체육관 주호, W급에 출전한 영등포 체육관 김춘석도 결승에 올랐지만 박동안과 함께 나란히 탈락했다. 이후 장족의 기량 발전을 거듭한 그는 1969년 5월 서울운동장 배구장 특설 링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아 청소년대회 (요꼬하마) 선발전에 라이트급으로 출전 결승에 진출한다.

결승전 상대는 남산 공전의 송대섭. 그는 F급의 이석운, B급의 김창석, Fe의 최재호와 함께 남산 공전이 70년대를 전후해 전국 무대를 석권할 때 한 축을 담당한 복서였다.

이 대결에서 박동안은 한차례 녹다운을 탈취하며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고배를 마신다. 당시 그를 지도한 트레이너 조순현 관장(전 KBC 사무총장)은 현장에서 편파 판정에 고개 숙인 박동안을 허탈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쓰린 속을 달랬다.

L급 우승자 송대섭은 LF 급의 김수원, F급의 이거성, B급의 고생근, LW 급의 박태식, W급의 박남용과 함께 체급별 우승자로 선발돼 본선에 진출한다.

박동안은 1969년 10월 프로로 전향한다. 전형적인 로컬 복서였던 그는 역대급(歷代級) 복서들인 WBC 슈퍼 라이트급 챔피언 김상현을 비롯 최만성·박조·진충문·오창근·김광선 등 최고의 강자들과 맞대결 승패를 초월 격렬한 타격전을 펼쳐 주목을 받았다.

1976년 9월 29일 박동안은 아시아선수권 금메달리스트이자 7전 6승 1무를 기록한 한국 jr 미들급 챔피언 주호와 10회전 경기를 펼친다. 1976년 6월 이경복을 꺽고 정상에 오른 주호 의 1차 방어전이었다.

강원도 춘천에서 벌어진 이 경기에서 박동안은 시종일관 주도권을 잡고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무승부였다. 결정적인 경기마다 <승리의 여신>의 외면을 받자 복싱에 환멸을 느낀 박동안은 결국 복싱을 접고 4년 후인 1980년 한국권투 위원회(KBC) 심판위원으로 변신한다.

지난날의 누적된 억울한 판정의 희생양 이 된 그는 그간의 아픔은 공명정대(公明正大)한 포청천으로 거듭 태어나는 원천(源泉)이 되었다.

프로복싱계에 필자가 한세대가 훌쩍 넘는 세월을 현장에 몸담으면서 느낀 점은 복싱은 기록경기가 아니란 점이다. 다시 말해 복서들의 레벨은 전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와 싸웠느냐가 선수의 클라스(Class)를 구분하는 중요한 척도(尺度)란 점이다.

각설하고 심판위원으로 전향한 박동안은 원숙하고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어 실력으로 국내외에서 분주하게 활동하면서 국내 심판 중 유일무이하게 WBA, WBC, IBF, WBO 4개 기구 국제심판을 모두 역임한다.

 

 ▲1988년 런던에서 열린 WBC 총회에 참석한 박동안 심판위원(중앙)

 

이를 발판으로 각종 세계타이틀전을 포함해 1988년 런던에서 개최된 WBC 총회, 2012년 멕시코에서 열린 WBC 창립 50주년 행사에 한국을 대표해 심판위원으로 참석했다. 그는 국제심판 자격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온 횟수만 200회가 넘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베테랑심판으로 견고하게 입지를 구축한 것이다.

1993년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한 학구파 박동안 위원은 사업에도 타고난 뚝심을 바탕으로 성공을 거듭한다. 1997년 3월 청량리에 코리아 체육관을 오픈한다.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조련을 시작 이근식, 채승석, 신동길, 조용인 등 4명의 국내 챔피언을 차례로 배출했다.

특히 2001년 12월 20일 일본 오사카 부립 체육관에서 열린 OPBF 슈퍼 밴텀급 타이틀 결정전에서 15전 15승 (12KO)을 기록한 WBC 밴텀급 8위인 홈링의 23세의 젊은 파이터 가나이 아키히로와 맞대결 1회 KO로 꺽고 정상 등극에 성공할 때가 가장 감격 스런 장면이었다.

 

▲일본에서 동양 타이틀을 획득한 조용인(중앙), 좌측 매니져 박동안, 우측 권순천 관장

 

당시 에이징 커브(Aging curve)를 그리기 시작한 28세에 15전 12승(7KO) 3패의 OPBF 수퍼 밴텀급 6위 조용인은 경기 장소, 랭킹, 연령, 전적 등 모든 면에서 단 한 가지도 앞선 게 없는 완전한 언더독 (Underdog)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동안 위원과 호흡을 맞춰 일본 복싱의 중심인 오사카에서 차세대 챔피언 후보인 일본 최고 유망주를 1회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맹폭을 가해 실신시켜버렸다. 조용인이 OPBF 슈퍼 밴텀급 정상 등극에 성공하자 관중석에선 경악(驚愕)과 정적만이 흘렀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플라이급 국가대표로 출전한 신동길도 2000년 30살에 프로에 데뷔해 조력자 박동안 위원의 뒷받침으로 플라이급과 슈퍼 플라이급 2체급에서 국내 챔피언에 올랐다.

박동안 위원은 가장 안타깝고 아쉬운 경기를 2009년 단양에서 벌어진 OPBF 밴텀급 타이틀 결정전에서 한국 밴텀급 챔피언 채승석이 필리핀의 말콤 투나카오와 대결에서 2ㅡ1 판정패를 당한 경기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숙적 권일과 타격전을 펼치는 채승석(우측)
 

2004년 국가대표 출신의 난적 권일(대원체)을 힘겹게 판정으로 잡고 국내 챔피언에 등극한 채승석은 이 경기를 발판으로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하지만 한국의 심판이 상대국에 승점을 주는 바람에 은퇴수순을 밟게 된다. 홈 링임을 감안 하면 무난한 판정승이 예견된 경기였기에 박동안 위원의 애석함은 극(極)에 달했으리라 짐작된다.

1978년 8월 19일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황복수와 파나마의 헥토르 카라스키야 전과 더불어 홈링에서 역(逆) 홈타운 디시젼으로 판결된 대표적인 경기였다.

두 체급 국내 프로복싱 챔피언 신동길은 2002년 11월 24일 이시하라 히데야스와 OPBF 플라이급 타이틀을 앞두고 훈련하던 어느 날 딸아이가 돌발 사고로 안타깝게 하늘나라에 별이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분위기로 경기를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신동길은 맘을 추스르고 의연하게 링에 오른다.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충격 속에서도 눈물을 머금고 11Kg을 감량해 링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박동안 위원이 평소 보여준 인간적인 신뢰와 따스함 때문이었다고 한다.

 

▲2008년 결혼식을 올린 박동안·이숙 부부
 

필자는 각종 행사장에서 박동안 위원을 자주 접한다. 가끔 그가 부부 동반으로 출격할 때 필자의 기쁨은 배가된다. 박 위원의 아내는 70년대 톱가수 이숙 씨다. 홍수환 옥희 커플에 이어 복서와 가수 커플 2호인 박동안 이숙 커플에 관심이 많은 것은 필자가 열렬한 이숙 누님의 <골수팬>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래전 이거성 프로모터의 소개로 이숙 누님을 알게 됐다.

 

 ▲행사장에 출연한 박동안·이숙 부부

 

가수 이숙은 허스키하면서도 독특한 음색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1974년 <눈이 내리네>로 데뷔 그해 TBC 신인 가수상을 수상 했다. 이후 <우정> <슬픔이여 안녕> <벌써 나를 잊으셨나요> <슬픈 눈동자의 소녀> 등의 곡을 발표 히트시키면서 제2의 패티 김으로 불린 인기가수다.


특히 데뷔곡 <눈이 내리네> 곡을 들으면 지난날의 낭만과 추억(追憶)의 향수(鄕愁)가 진하게 곡(曲)속에 묻어있기에 체육관에서 즐겨듣고 있는 애창곡이다. 이숙은 1979년 여동생이 살고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10년간 머물면서 사업에 성공, 현재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콜로라도주에 4만 평의 대지에 저택을 마련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인생 3막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지내고 있다.

 

▲1989년 김명복 배 우승을 차지한 신수영, 김경일, 김민기 (우측)

 

필자와 동석한 박동안 위원과 동향(해남)의 후배 김민기는 필자의 데뷔 원년인 1989년 서울체고 3학년 때 김명복 박사 배에서 우승을 차지한 복서다. 당시 용산공고 1학년 최요삼과 함께 관중석에서 그의 경기를 직관한 기억이 새롭다. 그때 왼손잡이 김민기의 경기를 보면서 제2의 신준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정도로 그는 발군(拔群)의 활약을 펼쳤다.


훤칠한 키에서 내려찍는 카운터 블루우와 발레리나를 연상시키는 경쾌한 스텝 등은 한 차원 높은 초(超)고교급 복서였다. 1984년 장안중 1학년때 명장 이형수 관장의 지도로 39Kg 급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후 마치 새하얀 화선지 위에 떨어진 먹물이 번져나가듯 서울체고 한국체대 대전 동구청을 차례로 거쳐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8체급을 석권한 국가대표 출신의 기린아(麒麟兒)였다.

이런 경력의 동향 후배 김민기(한국체대)를 박동안 위원은 대견한 듯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2022년 한해도 서서히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지고 있다. 박동안 심판위원의 가정에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하면서 건승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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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신동길님 2022-10-22 12:20:15
반가운 박사장님이시네요.
찾아뵙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글로나마 뵐수 있어 좋네요.
현역시절 많은도움 주셨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장흥민님 2022-10-22 12:44:54
오늘도 내가 감동 할수 있는 글을 읽게 해주어서 먼저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날이 갈수록 재미있고 기다려 지네요, 항상 조관장님 의 앞날에 영광과 행운이 따르길빌며 또 다음글을 기대 합니다.
이재영님 2022-10-22 13:53:46
멋진 복싱이야기
늘 재미있고 감동하며 보고 있습니다!
한국 복싱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신성수님 2022-10-22 13:59:43
박동완....내가 사회에 진출 한 후에 사회에서 우연히 알게된 선배 이기도 하다. 복싱을 하셨다는 소리와 프로 심판 위원이라는 이야기를 친구를 통해 알게된 선배 이다. 참 세상 좁다...이렇게 조영섭의 칼럼을 통해 박동완 선배님의 근황을 알게 해준....역시 조영섭이다..최고~!!
하대독님 2022-10-22 15:27:12
스포츠와 문화를 아우르는 넓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삼봉님 2022-10-22 15:52:59
새로운 분을 한분 소개 받은 기분입니다
에너지와 열정이 넘치는 멋진분을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김민기 관장님에 대해선 존경하는 선배라 두말할 나위가 없져
휴일에도 글 감사합니다
박근문님 2022-10-22 16:38:32
언제나 신선한 글쎄로 과거 복싱의 전성기
시대의 기라성 같은 영웅들의 섬세한 표현
으로 현실을 장식하는 만서의 노고에 감사
합니다
박성우님 2022-10-22 18:11:20
한국 복싱의 역사를 오늘도 즐겁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봉우 님 2022-10-22 18:40:54
역쉬 권투는 스포츠계의 신사 입니다.
권투 스타님들은 제2의 인생에서도 멋지게 사는 모습을 항상 보여 주셔서 본 받게 됩니다.
좋은기사 언제나 감사 합니다.^^:
유심조님 2022-10-22 20:12:01
복싱계의 포청천,햋빛과 소금
박동완 심판위원장님 !
건강과 행운을 빕니다.

복싱스토리가 있는곳이면 신출귀몰
축지법을 쓰시는 조영섭 기자님!
기사 한 줄도 팩트에 근거하고
이에 픽션 조미료까지 적당히 가미하는
조기자님은 컬럼계의 맛집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종원 님 2022-10-23 20:41:18
감사합니다
복싱역사의글 한분한분의역사적인글들을
늘읽게되어서 늘감시드립니다~
장민혁님 2022-10-24 08:53:56
오늘도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
권일님 2022-10-24 15:49:57
좋은글 재밌게 보고 갑니다.
선 후배 님들 날이 차갑습니다.
감기조심하세요~
강쥬성님 2022-12-14 16:58:04
조영섭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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