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스포츠 연예가 산책] 프로복싱 최초의 석사 복서 김재훈의 인생 유전

조영섭 / 기사승인 : 2022-10-11 21: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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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년 제1회 김명복 배 우승을 차지한 김재훈 선수(우측)
[조영섭=스포츠 기자] 2020년 2월 서울 대진고교 체육 교사직을 접은 전직 프로 복서 출신 김재훈 선배가 며칠 전 거주지 하남에서 필자의 체육관 인근에 도착해 오찬을 함께했다. 그와 담화를 나누면서 교직 생활 40년을 마감한 희노애락의 소회를 들었다.


1957년 경기도 화성 출신의 김재훈은 수원 삼일중 시절 농구에 입문했으나 1974년 3월 삼일실고에 입학하면서 수원 복싱 회관(관장 우광남)에 입문, 복싱을 수학한다.

당시 수원 복싱 회관에는 1978년 3월 제5회 킹스컵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유흥석과 1974년 11월 이건창을 잡고 한국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에 등극한 문수호 등이 간판 복서로 활약하고 있었다.

하룻강아지 김재훈은 어느 날 경험 풍부한 선배 복서와 스파링을 하다 손 한번 제대로 뻗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캔버스에 드러눕는다. 중요한 사실은 이때의 충격에 망설임 없이 다시 한번 더 해보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 6개월 뒤 그 선배와 다시 스파링할 때는 헤드기어까지 낀 선배를 한방에 녹아웃 시키면서 설욕을 했다. 김재훈은 그런 마인드(mind)를 지닌 멘탈 강한 복서였다.

현장에서 스파링을 지켜본 유흥석은 1979년 10월 프로로 데뷔해 2전 만에 김종호를 잡고 국내 JR 웰터급 정상에 오른 복서로 1988년 3월 은퇴할 때까지 27전 22승(16KO) 4무 1패를 기록한 강타자였다.

문수호 역시 1973년 11월 프로로 데뷔 1974년 11월 이건창을 잡고 국내 주니어 페더급 정상에 올라 최영철·신운철·곽기훈·이승일·김효성 등과 일합을 겨루며 23전 17승 (10KO) 3패 3무를 기록한 중견 복서였다.

김재훈은 농구선수 출신답게 복싱에 필요한 순발력과 민첩성을 고루 갖춰 만성의 대기로 시나브로 성장한다. 그해 학생선수권 2회전에서 진주 상고 천갑수란 높은 장벽에 막혀 완패를 당한다.

천갑수는 1976년 6월 벌어진 몬트리올 올림픽(웰터급) 최종선발전 결승에서 고교생으로 유일하게 결승에 진출 김주석과 일전을 벌인 레벨이 높은 복서였다. 이 경기에서 비록 졌으나 김재훈의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는 지도자가 있었다.

서울체고 복싱 감독으로 내정된 이의평 선생이었다. 복서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감지한 그분에 의해 1975년 서울체고 복싱부 창단 멤버로 김정수·김철규(한국체대) 등과 함께 입학한다.

1976년 전국체전 LW급 서울 대표로 선발된 김재훈은 1977년 5월 제1회 김명복 박사 배 웰터급에서 5전 전승 (3KO) 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한다. 7월 개최된 학생 선수권대회도 결승에 진출 2관왕을 노렸지만 정성용(양산종고)에 판정패, 고배를 마신다.

김재훈은 그해 10월 벌어진 58회 전국체전 준결승에서 혜성(彗星)처럼 등장한 전남 대표 황충재에 석패 한다. 김재훈은 이듬해 한국체대에서 서울체고 동기인 김철규·김정수와 함께 러브콜이 들어 온다. 그러나 숙적 황충재(당시 영산포상고)가 한국체대에 입성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태릉선수촌에서 국가대표로 활동한 박찬희의 조언을 듣고 동아대학으로 방향 전환한다.

이때 김재훈은 중대한 결심을 한다. 자신이 세계 정상에 올라설 수 있는 정신력을 테스트해보기 위해 서울과 부산을 달리기로 완주(完走)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것이다.

 

▲ 이계진 아나운서와 부산으로 출발하기 전 인터뷰하는 김재훈 선수(우측)

               

1978년 1월 14일 김재훈은 오후 2시 출발지점인 서울역 현장에서 이계진 아나운서와 출발 전 인터뷰를 마치고 11박 12일에 걸쳐 부산까지 456.5Km에 달하는 국도를 링(Ring)삼아 긴 레이스를 펼치며 25일 오후 2시 동아대학 정문에 도착, 완주에 성공했다.


당시 이 같은 감동적인 드라마는 4대 일간지에 실려 센세이션 (sensation)을 일으켰다. 중요한 사실은 김재훈은 당시 ‘요추분리증’이란 선천적인 장애를 안고 있었던 복서였다. 척추의 마디와 마디가 떨어진 것으로 운동선수에겐 치명적인 장애로 훗날 김재훈은 이로 인해 군 복무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는 완주 후 곧바로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훗날 공대식·박인태(부산 동아고) 등과 함께 동아대학에 입학한 김재훈은 1학년을 마친 1979년 건국대 사범대학 편입시험에 합격한다. 그리고 그해 5월 벌어진 제3회 김명복 배 준결승에서 인천체대 이춘희와 맞대결 1회 20초 만에 KO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 천갑수와 복수혈전을 벌인다.

 

▲ 제3회 김명복배 천갑수에 KO승을 거둔 건국대 김재훈 선수(우측)

               

김재훈은 이 경기에서 천갑수에 2회 KO승을 거두며 5년 전 패배를 설욕,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당시 한국체대 3학년에 재학 중인 천갑수는 조용래(경남대)와 김주석 (중앙대)등 역대급(歷代級) 복서들과 승패를 주고받은 국가대표 복서였기에 기쁨은 두 배가 되었다. 

 

이어진 7월 개최된 제29회 학생 선수권대회에 출전, 웰터급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관왕에 등극한다. 집념의 복서 김재훈은 쓰러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67전 55승(46KO) 12패를 기록하며 대학부 아마복싱 무대를 평정했다. 그는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이번에는 야심 차게 프로복싱 정복에 나선다. 

 

1980년 8월 홍수환의 소개로 신도체육관(관장 조순현)에 입관, 험난한 프로 세계에 뛰어들었다. 트레이너 홍수환의 체계적인 지도로 4전 3승(3KO) 1패를 기록한 그는 뜻하지 않게 홍수환과 결별한 이후 무소속으로 전락, 방랑자 신세가 된다. 수업이 끝나면 인근 익수제약과 한국화장품체육관을 전전하며 떠돌이 복서가 된 그는 ‘강포 프로모션’으로 이적한다. 

 

1981년 9월 7일 김재훈은 11전 전승 (3KO) 을 기록한 한국 웰터급 챔피언 황준석과 일전을 펼친다. 당시 건국대 졸업반인 김재훈은 교생실습까지 마친 상태에서 복서로서 꿈을 버리지 못하고 황준석과 대결을 추진한 것이다. 그의 복싱에 대한 강한 집착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황준석과 대결에 나서는 김재훈 선수(좌측)
 

 김재훈은 이 대결에서 승리하면 황충재와 대결을 주선해 달라고 <프로모터>에게 부탁했다. 어차피 복서로 시작된 인생 서서히 사라지는 것보다 연탄재처럼 한순간에 뜨겁게 타오르다 식어버릴지라도 화끈하게 강적들과 맞대결을 펼치고 싶었다. 그래서 프로 복서로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황준석과 대결에서 10회 판정패를 당한다. 1982년 건국대를 졸업한 그는 도봉 여중에 기간제 교사로 3년 근무를 마친 1985년 2월 16일 건국대 교육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는다. 오전에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오후 박영철과 마지막 은퇴 경기를 치룬다. 이 경기에서 8살이나 어린 4전 전승을 기록한 84년 신인왕 출신의 박영철 (88체)에 패하면서 링을 떠난다.

                     

▲ 황준석과 일전을 펼치는 김재훈 선수(좌측)

 

이때부터 자연인 김재훈의 고단한 여정이 시작된다. 막노동부터 시작해 인생의 험한 세파에 몸을 던지며 삶과 고단한 투쟁을 벌인 것이다. 그러던 1986년 겨울 어느 날 도봉 여중 제자로부터 대진고 체육 교사를 선발하는 임용(任用)고사가 있다는 정보를 접한다.

김재훈은 사생결단의 비장한 각오로 치밀하게 준비한다. 그리고 3개월 후 82대 1의 험난한 경쟁률 속에 첩첩이 가로막힌 산맥을 넘고 또 넘는 강행군을 펼친 끝에 마침내 1987년 3월 임용고사에 당당하게 합격했다. 견디기 힘들 때 강한 정신력으로 버틴 초인적인 사람이 강한 자다. 김재훈은 그런 사람이다.

사실 성공에는 근육의 힘보다는 생각의 힘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크다. 김재훈은 대진고에서 교직 생활을 하면서도 1992년부터 2008년까지 16년간 야간에 부천대학 겸임교수직을 수행하면서 1인 2역의 역할을 해냈다.

새천년에 김재훈은 한국권투 위원회 윤천택 홍보이사의 주선으로 한국권투 위원회(KBC) 심판으로 입성해 다시 프로복싱과 인연의 끈을 연결한다. 그는 1985년 건국대 교육대학원 석사(碩士) 학위 취득에 이어 2005년 동덕여대 대학원 체육학 과를 졸업, 박사 학위(博士學位)를 취득하면서 아시아 최초로 박사(博士) 출신 심판위원으로 기록됐다. 

 

▲ 아시아 최초 박사심판 김재훈 심판위원장

 

사람들은 누구나 최초이자 최고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최고는 언제든 바뀔 수 있으나 최초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한 피어리. 최초의 남극점을 정복한 아문센,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경처럼 최초라는 상징성은 영원한 이정표(里程標)다.


김재훈은 2006년 대진고 농구부 감독을 맡아 제36회 추계 남녀 중고연맹전에서 창단 2년 만에 준우승을 일궈내 지도력도 인정받았다. 현재 그는 프로복싱(KBC)심판위원장을 겸직하면서 방송사 스포츠 해설위원, 부천대 생활스포츠과 겸임교수, 육군사관학교 복싱강사 등을 역임했다. 작년 대진고 교사직을 퇴임한 그는 지덕체(智德體)를 겸비한 팔방미인에 다재다능한 유틸리티 플레이어다.

 

▲ 김재훈 심판위원장과 아들 김진용 선수
                        

김재훈의 또 다른 자랑은 농구 명문 휘문고와 연세대를 거쳐 2017ㅡ2018 시즌 프로농구 신인 드레프트 전체 6순위로 전주 KCC에 입단 센타로 활약하고 있는 2m 신장의 아들 김진용 군이다.

복싱계에서 잉꼬부부로 소문난 김재훈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실증해 보인 대표적인 체육인이기도 하다. 현재 경기도 하남에서 아내와 함께 인생 3막을 풍요롭게 살면서 지내고 있다. 지난 세월 수많은 좌절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이를 인생의 통찰(通察) 기회로 삼아 반전에 성공한 체육인 김재훈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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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0

압천님 2022-10-11 22:36:37
항상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대한민국 복싱 파이팅
대독님 2022-10-11 22:58:51
또 한분의 대단하신 선배 복서를 알게 되었습니다.^^ 항상 흥미롭고 생생한 일화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봉우 님 2022-10-11 23:27:21
김재훈님 정말 부럽네요.^^:
아드님도 잘생기시고 앞으로도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권일님 2022-10-11 23:42:15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날이 많이 춥네요..
건강 챙기시고 다음글 기대합니다.
신동길님 2022-10-12 06:59:06
오늘도 좋은 스토리 복싱선배님의 복싱소식 잘 읽고갑니다.
내 인생을 뒤돌아보게 되네요.
대단하시네요 김재훈선배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JAJ님 2022-10-12 08:42:28
이번 복싱스토리도 감사합니다^^
인생유전을 겪고 지덕체를 겸비하신 김재훈위원장님의 이야기가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복싱 빠이팅입니다!!!!!!
이재영님 2022-10-12 09:02:54
김재훈은 중대한 결심을 한다. 자신이 세계 정상에 올라설 수 있는 정신력을 테스트해보기 위해 서울과 부산을 달리기로 완주(完走)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것이다.

대단하고 멋진분이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인상깊은 복싱이야기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장민혁님 2022-10-12 09:03:54
몰랐던 복싱 이야기 감사합니다 ^^
유심조님 2022-10-12 10:03:37
지장 김재훈 챔프의 근있는 삶에 대해
박수를 보냅니다.
와신상담!

필자의 복싱사료는 깊은 산속 옹달샘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신용님 2022-10-12 11:18:40
김재훈 선생님의 멋진 인생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년퇴임 축하드리고, 앞으로의 인생도 건강하고 멋진 인생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삼봉님 2022-10-12 12:53:04
이분은 지덕체를 겸비한 선배님이시군여
이분의 인생스토리를 보면 귀감이 되는 스토리가 와닿습니다
복싱에 전념하면서 편입으로 학위를 따고 교편을 잡으며 멋진 가정을 일구어 나가며 행복을 만들어나가는 훈훈한 이야기 입니다
감사합니다
박기운님 2022-10-12 14:08:54
서울 부터 부산까지
와! 대단하시다
박기운님 2022-10-12 14:09:36
서울 부터 부산까지
와! 대단하시다
최명엽님 2022-10-12 14:45:11
선생님 역시 멋진 인생을 걸어오셨네요! 멋진 선생님을 이곳에서 뵐 수 있어 영광입니다. 언제나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고 걸어오신 인생이 저희들로 하여금 많은것을 배우고 느끼게 하네요 앞으로 건강하시고 기쁘고 행복한 일만 있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선생님을 응원하겠습니다.
이승후님 2022-10-12 15:10:44
선생님의 멋진 인생이야기 그리고 오뚜기처럼 일어나는 정신력 아무도 뛰지 않은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마라톤 또한, 아들들도 운동선수인 체육인 가족....
선생님의 화술또한 챔피언 입니다.
혹시나 주례가 필요하시면 김재훈 선생님께 부탁 하면 기억에 남는 결혼식이 될것입니다.
선생님의 제3의 인생을 응원하겠습니다.
이혁종님 2022-10-12 17:36:51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박성우님 2022-10-13 07:06:06
한국의 링의 박사 칸토 군요~
자랑스러운 한국 복서 중 한분이시네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문경호님 2022-10-14 16:17:29
지랑스런 김재훈선생님의
제자 문경호입니다.
대진고교재학시절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지금의 제가 있는것입니다.
선생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최초~♡♡최고~♡♡
건강하세요
신성수님 2022-10-17 15:21:43
김재훈 님을 본것이 생활 체육 복싱대회장 에서다. 재훈님께서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명함을 주셨다. 사관학교 복싱부 감독이란 직함과 프로 복싱 심판장이란 타이틀이다...이런 저런 애기를 하다가 다른 생활 복싱 대회에 참가를 부탁 하면서 헤어 졌는데.. 그 이후론 잘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조영섭의 칼럼을 통해 그 분을 다시 보게 되었다....역시 조영섭의 스포츠 연예가 산책이다...글 잘 보고 갑니다..
노원구님 2023-07-29 06:05:13
1990년 대진고 입학해서 김재훈체육선생깨 졸라 맞던 학생이었다
그땐 볼링도 하셧던걸로 알고있었는데 20년도에 퇴직하셧구만
맨날 해주신야한얘기 잘들었고 뒤에서 꼴통이라고 욕한거 미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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