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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미숙 소셜칼럼리스트. |
[칼럼] 강미숙 소셜칼럼리스트= 우리는 왜 고전을 읽는가. 우리는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아이들에게 비문학 지문을 통해 독해와 사고력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기는 한 것인가. 아이들이 12년 공교육을 거치는 동안 12권의 고전만 제대로 탐독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거라 생각한다. 우연히 작년 대입 수능시험 6월 국어 모평에서 체사레 베카리아 관련 지문을 보고 볼테르가 생각나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문제를 푸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18세기 중반 한 청년의 자살이 빚어낸 비극은 한 철학자에게 광신적인 맹목과 대중의 어리석음을 꾸짖으며 이성에 빛을 비추어야 하는 이유를 설파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 정신의 자유를 옹호한 볼테르의 <관용론>이다. 그리고 그 사건과 볼테르의 활동은 근대형법의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되는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을 낳았다. 조롱과 혐오가 판치고 공정이라는 가치가 전도되는 세상에서 아이들과 볼테르의 <관용론>과 <범죄와 형벌>을 읽고 싶다. 정작 중요한 메시지는 거세한 채 변별력에만 집착하는 문제를 받아든 아이들과 말이다.
조국 가족의 사건은 <관용론>이 탄생하게 만든 장 칼라스 사건과 몹시 닮았다. 사건이 만들어지고 키워진 과정, 수사기록과 이후 재판과정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비록 사형당하기는 했어도 장 칼라스는 만 3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복권된 반면 조국과 그의 가족은 여전히 올가미에 걸린 정쟁의 희생양이다. 언젠가 반드시 재심이 이루어질 거라 믿지만 아직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풍비박산 난 집안과 중증 환자로 영어의 몸이 된 아내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고통을 감내하는 중이고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이들 가족의 고난을 즐기는 새디스트들인 듯하다.
볼테르에게 지식인으로서의 앙가주망을 강조하게 만든 장 칼라스 사건은 1761년 프랑스 툴루즈 지방에서 개신교도라는 이유로 변호사가 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한 청년이 자살한 일에서 시작된다. 당시 공무원, 변호사, 의사는 개신교도에게 허용되지 않은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자살은 광기어린 대중들에 의해 아들의 카톨릭 개종을 막기 위해 가족이 살인했다는 소문으로 퍼져나갔다. 카톨릭 교도들의 부당한 모함으로 모범적인 가장이었던 청년의 아버지 장 칼라스는 사형이 선고되고 그의 가족은 추방, 재산 몰수 등 말 그대로 가족이 산산조각 났다.
앙리 4세의 낭트 칙령으로 위그노 전쟁이 끝난지 160여 년이나 지났음에도 대중을 종교적 불관용이라는 광기에 휩싸이게 만든 것은 마침 그해가 수천여 명의 개신교도를 학살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 2백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축제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중은 축제의 클라이막스로 장 칼라스를 광장의 교수대에 매달라고 외쳤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란 프랑스 내 신구교가 충돌한 위그노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1572년 앙리 4세의 유혈결혼식을 일컫는 말이다. 이때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개신교도 학살을 축하하는 축포를 쏘고 특별감사 미사를 집전했으며 기념 메달을 주조하며 하느님을 찬양했으니 광신과 맹목에 사로잡힌 대중들이 기념주간을 맞아 희생양을 점찍고 피의 축제를 즐기는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이 사건은 425년이 지난 1997년에 이르러 요한 바오로 2세가 카톨릭 교회 개입을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다.
사형이 선고된 1심에 이은 2심에서도 맹신과 편견, 대중의 광기에 고무된 법관들은 8:5로 칼라스 즉각 처형 판결을 내렸다. 거열형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구교로의 개종을 막으려고 아들을 죽였노라 자신의 죄를 자백할 것이며 잘못된 판결임을 시인하고 판사를 내몰기보다 노인 한 명을 처형하는 게 낫다는 게 반대하는 판사들을 설득한 근거였다. 그러나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한 칠순의 장 칼라스는 수레바퀴에 매달아 사지를 찢는 고문의 처형장에서 하느님을 불러 자신의 결백을 증인으로 삼고 잘못한 판사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며 죽어갔다. 그리고 그의 두 딸은 카톨릭 수녀원에 강제 수용되고 남은 가족은 추방되었으며 재산은 몰수당했다.
사건은 잊혀진 듯 했지만 소문을 들은 볼테르는 야만적인 형벌제도와 부당한 재판절차에 분노해 칼라스의 부인을 찾아가 상고심을 권유했다. 그리고 팜플릿을 만들어 파리 지식인 사회와 시민들을 설득, 칼라스 사건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재심여론을 조성했다. 덕분에 1765년 3월 9일 칼라스가 처형된 지 꼭 3년이 되던 날 대법원에서 무죄와 복권이 선고되었다.
볼테르는 프랑스 사법체계를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쓰고 종교적 불관용을 고찰하며 관용(tolerantia)에 근거한 합리적 이성과 절대오류와 편견에서 그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주제를 다룬 <관용론>을 탄생시켰다. 신념의 자율적 행사는 공공의 질서와 안녕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칼라스 사건에 대한 볼테르의 개입은 프랑스 지식인의 현실참여라는 앙가주망의 시초가 되었고 톨레랑스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그는 <관용론> 1장에서 칼라스 사건의 전말과 사법부의 폭력을 복기하며 “학문과 사상이 그토록 진보한 이 시대에 말이다!”하고 탄식한다. 그 말은 250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의 지적대로 절대오류와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은 게 인간임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옳다.
이 사건은 당시 유럽 전역에 알려졌고 특히 이탈리아의 젊은 법학도 체사레 베카리아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1764년 체사레 베카리아는 잔혹한 형벌과 자의적인 재판을 비판하고 고문과 사형에 반대하며 법의 예방주의적 관점을 강조하는 <범죄와 형벌>을 발표했다. 이 책은 죄형 법정주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 범죄와 형벌은 비례해야 한다는 형벌 비례의 원칙 등 근대 형법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베카리아는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는 선에서 형벌을 부과해야 하며 그 한계를 넘는 것은 법률의 횡포라고 못 박는다. 무려 258년 전에 말이다.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은 프랑스에서는 볼테르의 해설과 함께 번역 출간되었다.
볼테르가 당대 유럽을 지배한 카톨릭 교회의 부패와 타락, 불관용을 극렬하게 비판하면서 화두로 삼은 ‘파렴치’는 “명백하게 해롭고 합리적으로 반박 가능한 신념들에 집착함으로써 기본적인 인간성조차 부정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었으며 그는 언제나 보편적인 인간성에 호소했다. 그의 정신은 장 칼라스가 복권되고 한 세기가 지난 후인 드레퓌스 사건에서 또다시 빛을 발한다. <나는 고발한다>며 10년이 넘도록 지하감옥에 격리된 드레퓌스를 옹호, 민족주의 광기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 에밀 졸라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도 두번의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이라는 비극을 만들어 냈으니 인간은 과거로부터 배우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과거를 끌어다쓰는 파렴치들에게 늘 권력을 내어주는 어리석은 존재들이다.
한국판 장 칼라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의 주인공들은 안녕하신가. 조국 교수는 지식인으로서 현실참여를 통해 사회개혁에 이바지하는 앙가주망을 실천했다는 이유로 정치적 박해를 당하는 볼테르이자 드레퓌스다. 그리고 동시에 산산조각난 가정을 지켜볼 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는 장 칼라스다. 나는 ‘볼테르의 주장을 가장 잘 요약한 것은?’ 이라든가, 베카리아의 저작에서 그의 근대 형법 정신이 아니라 어휘력을 묻는 식의 문제풀이에 종지부를 찍지 않는 한 윤석열 같은 자들에게 나라의 명운을 맡기는 일은 되풀이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볼테르는 교단의 부패와 성직자의 타락, 교회와 국가권력의 분리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등 당대 유럽을 지배한 카톨릭 교회를 극렬하게 비판했다는 이유로 스위스로 피신하기도 하고 사망한 후에는 파리의 교회와 묘지에 매장거부를 당한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후 프랑스 최고영예인 팡테옹에 이장된다. 역사가 나선형으로 진보하는 게 맞다면 언젠가 조국 교수도 그대가 조국, 내가 조국이라며 깃발을 놓지 않는 시민들에 의해 명예회복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문제는 정경심 교수다. 두 자녀의 어머니로서 너무나 평범하게 어머니 역할을 해온 그녀는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진 새우이자 한국판 장 칼라스다. 장 칼라스의 재심운동을 편 볼테르, 정경심 교수를 위해 변론해 줄 볼테르는 어디 있는가. 그가 말하는 관용이야 기대를 접는다손 쳐도 체사레 베카리아는 형벌은 공익을 해친 범위 안에서 집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제 좀 솔직해지자. 대한민국은 봉사활동과 표창장으로 대학과 대학원 합격을 결정짓는 나라인가. 대한민국 공교육은 학생들의 생활기록부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할 수 있는가. 이미 4년형을 선고받고 절반의 형기 이상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하고 있으니 형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최소한 인간으로서 치료의 기회는 주는 것이 문명사회일 진저. 나는 오늘 저녁에는 그녀가 병원에서 치료일정을 시작하게 되기를 바란다. 봉사활동 시간과 독서기록 따위에서 그녀와 다를 것 없는 대한민국 평균치 학부모였던 나도 이제는 두발 뻗고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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