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민주주의의 위기

유창선 / 기사승인 : 2018-08-17 17: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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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정당의 백호주의 주장에 정치권 술렁거려

백호주의 부활을 주장해 논란의 중심에 선 프레이저 어닝 상원의원. <사진=게티이메진스 제공>

이번 주 호주 정계는 한 상원의원의 의회 발언으로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한 혼란에 빠졌다. 퀸즐랜드 무소속 프레이저 어닝 상원의원은 의회 연설에서 중동계 무슬람 이민자 수용을 반대하면서 유럽계 이민자만 수용하는 백호주의의 부활을 주장했다. 그는 이것을 ‘마지막 해법(final solution)’이며 이에 대해 국민투표를 시행할 것을 주장했는데, 마지막 해법이라는 표현은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유대인들을 학살했을 때 사용했던 표현이라 더욱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어닝 상원의원은 상원의원으로서의 자신의 첫 번째 연설을 이러한 논쟁적인 이슈로 시작했는데,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도 포함하고 있다. 호주는 의원 내각제와 소수 정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투표제도로 인해 군소 정당의 이합집산이 잦은 상황이다.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대표적인 다수당인 노동당과 자유당도 군소 정당이나 무소속 의원과 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수 의견이라도 이슈화시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면 다수 정당을 상대로 교섭을 통해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번 어닝 상원의원의 발언은 집권당인 자유당뿐만 아니라 제1야당인 노동당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두 정당 대표 모두 어닝 상원의원과 정치적 제휴를 고려하지 않겠다고 했고, 어닝 의원의 보좌관조차 이 연설 이후 보좌관직을 사퇴하는 등 주류 정치계에서 비난받고 있다. 하지만 군소 정당인 카터 오스트레일리아 당 대표는 그의 연설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그를 지지했다.

어닝 의원의 이번 발언의 미묘한 점은 무슬림계 이민자들에 의한 호주 사회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해법으로 유럽계 이민자들만 받자는 주장을 통해 아시아계 이민자까지 배제한다는 것이다. 무슬림계에 대한 호주사회의 불안감을 활용해서 아시아계까지 견제하는 것은 극우주의의 배타주의적인 모습을 강조하기 위함일 수 있으나, 이런 대결구조는 자칫 아시아계 이민자들까지 일부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울 수 있어 아시아계 호주인들에게는 더 자극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최근 호주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지고 중국의 아시아-태평양 정책이 공격적으로 변함에 따라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 아직은 중국계 이민자들에 의한 반사회적이거나 반국가적인 행동이 이슈화할 정도로 크지는 않으나, 이들의 친중국적인 행동들이 노골화될 경우 이를 빌미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계 이민자 전반에 대한 반감이 커질 우려도 있다. 이 경우 극단주의적 성격의 일부 정치인들은 이를 이슈화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고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2017년 한국은 호주에게 있어 3대 수출국이고 4대 수입국이지만 많은 호주인에겐 아직도 ‘동아시아인=중국인’이라는 인식이 있다. 더구나 근래 북핵 문제로 인해 한국 관련 소식보다 북한 관련 뉴스가 호주인에겐 더 익숙한 형편이다. 중국과의 이미지 차별화와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지도 제고를 미리 진행하지 않을 때 중국과 호주 간에 갈등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게 될 때 한국이 중국과 묶여 의도치 않은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 이성적이거나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감성적인 도발이 더 효과적인 현대 정치 현실에서는 평소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의 힘은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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